우리 차계는 5개월 사이 숨 가쁘게 돌아갔다. 지난 6월 본지를 통해 첫 공개된 월산차 상표를 시발로 차계의 지각변동이 예견되었다. 월산차(月山茶) 이후 터져 나온 소식이 정약용의 막내 제자인 이시헌(李時憲, 1803~1860)의 필사로 알려진 『강심(江心)』 속에 전해진 『기다(記茶)』였다. 그 책을 공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시헌의 후손인 이효천 씨였다. 월산차 상표 또한 그의 손에 의해 공개되었으니 또다시 그의 손에 의해 파란만장한 근세 한국 차문화의 판도가 바뀔 순간에 놓이게 되었다.
『동다기』가 공개되기 직전인 11월 1일 필자는 차 애호가인 최성림 씨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동다기』가 강진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이야기 끝에 그가 추사의 「세한도」에 얽힌 비화를 한번 정리해 보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그 다음날 11월 2일 '한국 최초의 차 저술서 『동다기』 드디어 발굴되다'라는 기사가 일간지를 장식했다. 정말 뜻밖에도 예언처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동다기』의 저자는 이덕리
강진이 새삼스럽게 차문화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된 시절 차에 몰입되어 걸명계를 조직한 뒤 그 제자들로 하여금 다신계(茶信契)를 맺고 해마다 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전해올 정도로 강진은 차문화의 중심이었다.
다산은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는 '음주망국 음차흥국(飮酒亡國 飮茶興國)'을 들고 나왔을 뿐만아니라 이에 『동다기』를 저술, 차문화를 전면에 부각시켰던 인물로 알려졌다.
『동다기』를 1990년대 초 용운 스님이 『다담』지를 통해 번역하여 소개한 이후 그 원전의 실체에 대해 궁금했었다. 용운 스님이 공개한 『동다기』의 저자가 전의리(全義李)로 밝혀졌을 뿐 그 원본이 공개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동안 『동다기』의 저자는 다산 정약용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동다기』가 발견됨으로써 저자가 이덕리(李德履, 1728~?)로 밝혀졌다. 2006년 9월 15~16일 다산 선생 자료를 수집하러 강진 백운동의 이효천 씨 댁을 방문한 한국한문학 전공자인 한양대 정민(45) 교수의 노력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각종 시문 필사본 묶음집 『강심』 속에서 찾은 『동다기』의 원래 이름은 『기다(記茶)』이고 저자 또한 다산이 아닌 이덕리로서 이 책은 이시헌이 필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심』은 가로, 세로 19.6cmx15.3cm이며 행서와 초서를 절반가량 섞어 필사한 55장 분량의 책이다. 『동다기』로 밝혀진 『기다』는 이 책의 10쪽 분량을 차지한다.
용운 스님이 발견한 『동다기』는 다경 합집으로 다경, 다탕, 다보, 다기, 다론, 다송, 발기 중 다기(茶記)에 포함되었다. 원 저자가 전의리로 되어있고, 묵담 스님 소장 자료에서 발견되었으나 그 원본이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또한 『동다기』라고 밝히지 않고 있으며 두 책이 『기다』와 『다기』로만 되어있을 뿐 그 원본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기다』는 1785년 전후 저자로 밝혀진 이덕리가 진도 유배시절에 지은 것으로 나타났다. 책을 필사한 이시헌은 이 책 『강심』에 적힌 사(辭)와 문(文)의 시는 바로 이덕리가 옥주(沃州)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지은 것으로 확인했다. 그러면 이시헌의 『강심』 속의 『기다』의 원 저자인 이덕리는 누구인가.
이덕리는 정3품 절충장군을 지낸 무인으로 1976년 사도세자 복권 움직임과 관련한 상소 사건에 연루돼 진도에서 18년 간 유배생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덕리의 『기다』가 발견되기 이전 법진 스님 본의 『다경』 속에 『다기』가 발견되어 1990년 초 『다담』지를 통해 10여 차례 연재된 바 있다.
또한 『강심』의 『기다』에 비해 용운 스님의 『다기』는 『동다기』의 절반가량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그 원전이 공개된 적도 없다. 이번에 『강심』 속의 『동다기』의 전량이 공개됨으로써 차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동다기』 원본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강심』 속에도 『동다기』란 정식 이름이 등장되지 않고 『기다』로만 나와있다. 다산이 썼다는 『동다기』는 50년 뒤 초의가 『동다송』에 『동다기』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동다기』로 굳어졌다.
'동다'란 동국 혹은 동토의 차를 말한다. 고승의 금석에도 동다란 말이 도처에 나온다. 『조당집』에는 동류지설(東流之說)이란 말이 나온다. 중국 선승들이 말하길 나의 법이 동쪽에 꽃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초의 선사의 『동다송』에 이르길 어떤 이는 우리나라의 차와 효능이 중국의 월지방 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쩍어했다. 내가 보기에는 색과 향과 맛에 있어서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일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차는 중국의 육안차의 맛과 몽정차의 약효 등 두 가지 모두를 겸비했다고 말하였다. 『동다기』란 바로 초의 선사의 『동다송』에 언급되면서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것으로 굳어진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다기』의 진본이 밝혀지지 않는 까닭에 설만 난무했다. 이제 이덕리의 저술로 밝혀지면서 한국 차문화사를 새로 쓰는 개가를 얻은 셈이다.
이번에 새로 밝혀진 『강심』의 '다조' 편에 차의 연원과 국내 음용현황, 차의 가치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차 재배를 나라가 진흥시켜 대외 교역품을 활용하고 수익으로 재정과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는 등의 정책 제언을 담고 있어 다시 연구할 단서를 제공한 셈이다.
다산도 『경세유표』 등에서 차와 말을 바꾸는 다마무역을 조장한 바 있는데 이는 이덕리의 영향을 받아서 펼친 주장이라고 정민 교수는 밝혔다. 아무튼 『동다송』보다 50년이나 앞선 이덕리의 『기다(記茶)』의 발견으로 무명 실학자 이덕리를 다시 연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개진되고 있다. 차계는 반가워하면서 하루빨리 『동다기』의 진본이 발견되어 차문화의 새장을 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석천(본지 편집위원)
-『차의 세계』12월호 참조
김정환
위 내용중 차 애호가인 최성림씨와 조금 알고 있답니다.
차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계시죠.김해분입니다.
